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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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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미술
작성자 이준한 등록일 19.01.03 조회수 359
첨부파일

3-01인동연화문전돌

인동연화문전돌

3-02석수일신구

석수일신구

3-03금관장식

금관장식

3-04금동용봉봉래산향로

금동용봉봉래산향로

3-05금동용봉봉래산향로부분

3-06금제심엽형이식

금제심엽형이식

3-07무령왕릉내부

무령왕릉 내부

3-08송산리고분군

송산리고분군

3-09정림사지5층석탑

정림사지5층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석탑으로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소재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졌고 높이는 8.33m이다. 정림사는 사비의 시내 한가운데 있던 중요한 절이었다. 1963년 12월 20일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개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한국 석탑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다. 탑 각부의 특이한 양식은 한국 석탑 양식의 계보를 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미륵사지 석탑에서 시작된 백제 석탑의 형식을 정비한 이 탑 이후 백제 석탑의 형식은 다소의 세부 변화는 있었으나 고려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3-10미륵사지석탑

미륵사지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으며, 한국에 남아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 무왕의 재위기간 중인 639년에 만들어진[1] 이 석탑은 백제 석탑의 시원 형식(始原形式)이라고 불리며, 여러 면에서 한국 석탑 전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해체 당시 높이는 14.2 m로,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는 한국 최대의 석탑이다. 이 석탑은 목조 건물을 석재로 구현하여 백제의 목탑 모습을 잘 보여준다.

3-11정지원명일광삼존불

정지원명일광삼존불

3-12금동관세음보살입상

금동관세음보살입상

3-13서산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

백제 후기에 중국 및 고구려와의 해상 교통을 통한 불교 문물 수용의 요지였던 서산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중앙에 여래 입상의 거구(巨軀)를 양각(陽刻)하고 여래의 오른쪽에 보살 입상을, 왼쪽에 반가사유형 보살좌상을 배치하였다.[2] 삼존에 나타난 고졸(古拙)한 미소는 백제 불상의 특이상(特異相)으로 지적된다.

3-14연화문

연화문

연꽃의 형태를 일정한 형식으로 도안화한 무늬

3-15산수문전

산수문전
1937년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출토된 8종의 문양전(보물 제343호)과 함께 출토된 것이다. 산수문양을 얕은 부조(浮彫)으로 판형을 떠서 구워 만든 고대 문양의 일종으로,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전개된 산수문의 특징과 함께 초기 산수화의 시원적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3-16성덕태자상(쇼도쿠태자상

성덕태자상(쇼도쿠태자상)
쇼토쿠 태자(일본어聖徳太子574년 2월 7일 ~ 622년 4월 8일(일본서기 - 621년 2월 5일설 있음))는 일본 아스카 시대의 황족이자 정치가였던 우마야도 황자(厩戸皇子) 또는 우마야도 왕(厩戸王)에 대한 후세의 호칭이다. 요메이 천황의 장남이고 어머니는 긴메이 천황의 황녀 아나호베노하시히토 황녀(穴穂部間人皇女)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과거에 성덕태자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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